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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실수업을 읽고
  • 강민수
  • 2016-09-25
  • 조회 353
  •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데이비스 케슬러의 두 번째 가르침인 상실수업을 읽기위해 선택했을 때 인생수업에서의 죽음과 관련된 그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까라는 기대감으로 책읽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 직업상 특징으로 죽음을 앞둔 많은 환자분들과 대하면서 죽음을 준비하는 데 있어 내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책을 읽어나갔다. 하지만 이책을 읽으면서 내가 더 도움을 받고 있었다. 이 책속에 닮겨있는 표현들은 내 삶에서 필요한 교훈이 되는 훌륭한 지침서가 되고 있다.

    일단 이 책을 펼치게 되면 신은 감당할 만큼의 고통을 준다라는 표현이 나오게 된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고통이란 없다는 뜻이다. 어떠한 상실도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것은 없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상실에 의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았다. 분명 상실은 생각만으로도 고통이며 그 상실이 일어나기 전에 예감하는 것 역시 엄청난 고통이다. 그런 상실과 상실의 예감이 가져다 주는 슬픔의 예를 이 책에서 보여주면서 공감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가고 있는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깊은 고통으로 말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그런 슬픔의 5단계를 설명하고 있는데 첫 번째 단계는 부정, 두 번째 단계는 분노, 세 번째 단계는 타협, 네 번째 단계는 절망, 그리고 마지막 단계가 바로 수용이다.

    이것처럼 슬픔의 첫 단계인 부정은 우리가 상실에서 도저히 헤어 나오지 못하도록 만들어 인생이 무의미해지고 감당할 수 없게 느껴질뿐더러 삶이 이치에 맞지 않아 보이게 한다. 충격과 부정의 상태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점점 정신이 무감각해져 어떻게 살아갈지, 살아간다 해도 왜 살아가야하는지 의문스럽다가 그저 하루를 견뎌 낼 방법을 찾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럴 때 부정과 충격은 상실을 극복하고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주며 부정은 슬픔의 감정이 몰아닥쳐오는 속도를 더디게 해준다고 말한다. 이처럼 부정안에 자비가 숨겨져 있고 그것은 인간이 감당할 만큼만을 허락하는 신의 방식이라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충격와 부정은 영혼을 보호해주는 장치인 것이라 이 책은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부정은 말 그대로 안좋은 말이며 삶을 나쁜쪽으로 이끄는 단어라 생각했다. 하지만 죽음에 있어서 부정은 없어서는 안될 꼭 필요한 존재임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죽음을 부정하면서 눌러왔던 감정이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분노가 시작된다. 그 분노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서 혼란스러워하며 정신적으로 힘든 경험의 예를 설명해 주면서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30분 동안 울어야 할 울음을 20분만에 그지 말라고 말하면서 화 내는 것을 권장하고 참지 말고 실컷 울으라고 설명하고 있다. 눈물샘이 마를 때까지 울어도 멈출 수 없을 것 같던 눈물도 언젠가는 마르고 눈물을 흘림으로서 분명히 치유가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분노의 단계가 지나면 타협의 단계에 이른다. 이 단계에서는 만약 ...하지 않았더라면 이란 생각에 그 상황을 지우려고 하곤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비로소 타협을 경험하고 나서 그 다음에 찾아오는 것은 절망이었다. 늘 당연히 내 옆에 있었던 사람이 없다는 것, 지금까지 제대로 돌던 지구가 돌지 않는 것 같은 느낌으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고 아무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 상태를 말하고 있다.

    이 책은 또 상실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떠나간 이가 해왔던 것, 그것을 하라고 한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 우리 삶 속에서 맡고 있는 역할의 자리가 얼마나 큰지 실감하지 못한다. 그 누군가의 부재또는 상실로 인해서 그 누군가가 맡고 있던 역할의 부재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하고 있다.

    슬픔에 종결은 없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참 비극인 것 같다. 수용에 단계에 이르러서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는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어느 기념일에 어느 특정한 추억이 긋든 날엔 다시 슬픔이 다시 찾아 올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상실의 순간이 지나고 다시 슬픔의 순간이 찾아올 때, 편지를 씀으로써 나의 감정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나역시 상실을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언젠가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곁을 떠날 때가 올 것임을 알면서도 그것이 지금 올 것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고, 생각할 수도 없다. 그 어떤 것으로도 이 상실을 피해갈 수 없고 그런 방법은 있지도 않다. 다만 우리는 이 상실의 현실을 어떻게 수용하고 극복해 나갈 것인가를 생각할 수는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상실을 피하지 말고 상실의 밑바닥 까지 발을 디뎌 보라고 말한다.

    우리는 스스로 때가 되면 슬픔을 다룰 것이다. 슬픔 안에는 우리가 그것을 감당 할 수 있을 만큼 나이가 차거나 심리적으로 준비가 될 때까지 상실을 붙잡아 둘 자동안전장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슬픔이 우리안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날 때가 좋은 것이며, 아무것도 안 일어나는 것보다는 자주 일어나는 것이 더 낫다며 상실에 대한 언급은 회피해야 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발을 디딤으로써 치유해야할 과정이라 설명하고 있다.

    삶에 대해 가르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서, 왜 죽음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가? 라고 이 책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제 것 상실은 금기시 되어 왔고 아무도 그것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았으며 언급하는 것 자체가 고통을 상기하게 되고 또 그것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상실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거라 생각하였다.

    상실의 상황을 생각 할 때, 마치 다시는 살 수 없을 것처럼, 삶이 예전과 같을 리 없고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질 것이나 어떤 이는 여러 상실을 겪은 후 새로운 의미와 목적을 찾기 위해 다시금 힘차게 삶을 살아보기로 결심하는 예를 들어 나를 이해시키고 있다.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의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다가 죽음을 맞이 했을 때, 남겨진 사람은 사랑한 이의 극복할 수 없는 삶의 종식과 이젠 더 이상 고통스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시간이 얼마 지나면 그들은 사랑한 이의 죽음이 고통스런 삶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에 또 한번 놀라고 죄책감을 느낀다고 예시를 들이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다.

    상실은 가장 큰 인생수업이라고 말하면서 상실만큼 힘들고 아픈것도 없을 것이라 한다. 그러나 모든 고통에는 치유와 성숙이 존재하고 그것은 고통의 크기에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상실이 어마어마하게 큰 고통이기에 분명 그것에는 어마어마한 치유의 방법이 존재 할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상실이 가장 큰 인생의 수업인지도 모르겠다.

    슬픔의 은총과 기적을 이야기 하면서 이 책은 마무리가 된다. 슬픔은 정말 희한하게 슬퍼함으로써 슬픔을 치유하는 효력을 가지고 있어서 슾픔이 찾아올 때 참지 말고 맘껏 슬퍼하라고 말한다. 그 힘이 우리의 남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 설명하고 있다.

      아직 인생의 슬픔과 상실을 겪기에는 적은 삶을 살아온 나이기에 이 책을 통해 나에게 있을 미래의 슬픔과 상실을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준 인생의 지침서 같은 책을 만나게 돼서 얼마나 행운인지 모르겠다. 조금은 더 성숙된 사람으로, 조금은 더 공감하고 희생할 수 있는 간호사가 될 수있을 거라는 생각에 오늘도 난 열심히 근무를 하게 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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